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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틴과 세계 복음화에 열정을 가진 교회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지난 주 월요일에 있었던 신학교 강의를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1시간 20분씩 다섯번의 강의로 십자가를 본받는 삶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십자가를 본받는 삶을 통해 삼위하나님을 이해하고,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 곧 믿음 사랑 능력 소망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러한 공동체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십자가를 본받는 삶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은 힘(권위) 있지만, 그 힘을 자기를 위하여 사용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내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관해 열심히 강의하고 있는데, 한 목사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목사님은, 목사님의 교회는 그 사랑을 어떻게 이루고 계십니까?” 조금은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대답을 드렸습니다. “사실 저도, 우리 교회도 십자가의 사랑을 온전히 이루고 있지는 못합니다. 우리도 때론 다투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한동안 불편해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멈춰버리면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겠지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제도, 우리교회도 완전한 사랑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랑을 향한 방향을 정하고 따르기로 결단하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12~14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 지금 100%는 아니지만, 현재 1%에 불과한 모습이라고 하더라도 그 방향으로 2%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대답을 드렸습니다. 

우리 사랑의 교회는 완전한 사랑을 이루고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지상 교회 중에서 완전한 사랑을 이룬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교회가 어쩌면 더 못 한 사랑을 이루고 있는 교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그 방향을 향해 조금이라도 전진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일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사랑의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전진해 나가는 우리가, 우리 공동체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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