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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한 민감성(1)


죄에 대한 민감성 (1)


기독교 서적의 고전 존 스토트의 “십자가”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의 의미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세상이 아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의미를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하마르티아’는 표적에서 빗나간 것,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 것, ‘아디키아’는 “불의 혹은 “부정”이라는 의미이고, ‘포네리아’는 사악하거나 부패한 종류의 악을 가리킵니다. 보다 능동적인 단어로는 ‘파라바시스’는 “침입” 혹은 “침해”, 즉 일정한 한계를 넘어가는 것을 가리키며, ‘아노미아'라는 단어는 “무법”, 즉 일정한 법을 무시하거나 어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하여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법과 우리 자신 사이에는 치명적인 상응 관계가 존재하며, 죄를 범한다는 것은 “불법”(요일 3:4)을 행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와 사랑을 거스리는 것을 뿐만 아니라, 우리 서로간의 안녕을 거스려 행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죄의 사악한 자기 중심성입니다. 하나님의 전능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올려 놓기 위하여 “주 하나님을 쫓아내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내가 그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에밀 브루너는 “죄는 도전, 교만,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욕망, ... 하나님께 대하여 인간은 독립적이라는 주장, ... 자율적인 이성, 도덕, 그리고 문화의 구성체이다.”라고 요약합니다. 말씀을 떠난 자율적 생각, 자기 판단이 죄의 근원이 됩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어휘에서 죄라는 단어를 은혜해 버렸다고 존 스토트는 지적합니다. 죄의 심각성에 직면하기를 꺼리는 마음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죄가 사라진 이유를 메닝거 박사는 첫째는 많은 죄들이 범죄들로 바뀌었으며, 그리하여 그것을 다루는 책임이 교회에서 국가로, 성직자에게서 경관에게로 넘어갔으며, 한편 다른 죄들은 질병으로, 혹은 적어도 질병의 징후로 바뀜으로써, 이 경우에는 형벌이 치료로 대치되었음을 주목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죄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있어서 국가로부터, 직접 경찰로부터 범죄사실이라고 적시되지 않으면 자신은 죄가 없고 올바르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한 무질서한 삶이나 행동으로 짓는 범죄로 인한 질병도 단순히 질병이 발생한 것이지 죄라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고집스럽고, 반항적이며, 혹은 불충실한 특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무시당하거나 공격을 당하거나,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의 태도에서 나타나는 죄에 대해 조금 더 민감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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