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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한 민감성(2)


죄에 대한 민감성 (2)


지난 주에 이어서 죄의 민감성에 대한 칼럼을 나눕니다. 


현대는 죄를 성경적인 아닌 사회적으로 정의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에 따른 죄의 민감성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식하는 죄의 의미만을 생각하게 함으로 죄에 대해 둔감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죄는 사라진 상황이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있어서 국가로부터, 직접 경찰로부터 범죄사실이라고 적시되지 않으면 자신은 죄가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무질서한 삶이나 행동으로 짓는 범죄로 인한 질병도 단순히 질병이 발생한 것이지 죄라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고집스럽고, 반항적이며, 혹은 불충실한 특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 자신이든, 타인이든 무시당하거나 공격을 당하거나, 상처를 입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것이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는 죄가 되지 않겠지만, 성경적으로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 대해 조금 더 민감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에베소서를 통해서 우리는 신령한 복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새기고 있습니다. 신령한 복을 받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존재가 되었고, 소외에서 화해로, 배척하고 배척당하던 존재에서 평화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인해 좋았던 하나님의 관계가 파괴되거나, 사람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있다면 거기에는 죄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상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하고 파괴되는 계기가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돈에 더 많은 욕심을 내어서, 나의 취미나 유흥을 더 즐기고 싶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있다면 거기에 죄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 아내와 자녀, 직장 관계나 사회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과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이 죄로 인한 결과는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하나님, 나와 타인과의 관계가 어색해지고, 파괴되는 것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또한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찾아보는 것입니다. 진리의 문제가 아닌 것에 내가 고집부리는 것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죄가 될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서 핑계거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져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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